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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적 충동] 인간의 심리가 자본주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탁월한 보고서

독자로서 이 책을 읽으며 누릴 수 있었던 기쁨은 다음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행동경제학이라는,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한 분야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심리가 경제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한 학문입니다만, 그렇다고 이 책을 미시경제학으로 오해하시면 곤란합니다. 놀랍게도, 공황, 글로벌 금융위기, 경제정책, 실업 같은 거시경제 문제들에 영향을 미치는 인간의 인간적인 행동양식을 매우  통찰력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둘째는 케인즈가 역작  <고용, 이지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에서 언급했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 즉 인간의 비경제적 또는 비이성적 동기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습니다. 그러니까 케인즈 이론의 핵심은, 시장이 마냥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돌아가는 것이 아니므로, 때로 정부가 적절하게 개입하여 부모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두 명의 저자는, 케인즈 이론에 근거하여, '자신감, 공정성, 부패와 악의, 화폐착각, 이야기'라는 야성적 충동의 5가지 측면과 그것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  

 

세째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일 수도 있는, 최근 전세계를 휩쓴 글로벌 금융위기, 이로 인한 전세계 경제의 혼란에이 5가지의  '야성적 충동'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던 것인지에 대해, 색다른 시각을 제공합니다. 즉, 인간의 야성적 충동이 불황, 실업, 물가상승, 저축, 금융과 기업투자, 부동산시장의 부침, 빈곤 같은, 골치 아프지만 중요한 문제들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설득력 있게 분석합니다. 만일 경제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움직인다면, 이런 문제들에 대한 답은 구할 수 없겠지요.

 

원저가 발간된 것도 번역된 것도 2009년이니, 이 책은 참으로 따끈따끈한 정보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례로 가득차 있다 보니 더욱 현실적으로 읽히고 가깝게 와 닿습니다.  물론 이 책의 모든 설명이 다 쉽게 읽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경제를 이해하는 데도 상당한 시사점을 줍니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최근에 총리가 되신 분도 케인즈의 영향을 받으셨던 터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야성적 충동' 이라고 한마디 하신 기억이 납니다. 이 책이 우리 경제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요? 저자의 글 가운데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갈음하겠습니다.

 

"자본주의는 최고의 상품을 제공할 수 있지만, 정부가 규칙을 정하고 심판으로 개입하는 경기장에서만 그러한 경기가 가능하다는 교훈을 잊어버린 것이다... 야성적 충동이 작용하는 세계는 정부가 개입할 여지를 제공한다.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야성적 충동이 공공선을 위해 창의적으로 발휘되도록 통제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부는 경기의 규칙을 정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정하는 규칙이 어떤 규칙이냐, 그것이 일관성이 있느냐, 그리고 신뢰를 주느냐도, 참 중요한 문제겠네요. 아, 이런 부분도 야성적 충동의 영역인가요? (사회학, 행정학, 정치학 등에서는 이를 사회적 자본 Social Capital이라고 하여 한 사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산으로 평가합니다.)

 

참, 이 책은 제가 매우 존경하는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가 추천사를 쓰셨습니다. 그리고, 저자인 조지 애커로프와 로버트 쉴러는 '경제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에 관한 연구로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by cherry | 2009/11/05 09:38 | 글책 | 트랙백

[District 9] 차이, 루머, 편견 그리고 차별에 관한 영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더군.
그니까 이 영화는 말이지,
차이와 루머와 편견, 그리고 차별에 관해 말하는 영화더라구.

여러 매체에서 지적했듯이, 외계생명체인 프라운을 우리 사회 소수자, 
그니까 이주노동자나 성소수자, 집없는 이들, 장애인들로 치환하면,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너무나도 명확한 거지.
더 무서운 것은 우리는 다 경계에 있음을 전한다는 것.
오늘 내가 소수자가 아님에서 오는 안락에 기뻐한다 하더라도,
내일 내가 바로 그 소수자가 될 수 있고, 
그렇다면 내가 소수자가 아닐 때 외면했던 고통들은 고스란히 내 것이 된다는 사실.
그러니, 우리들은 오늘 내가 소수자가 아님에 그냥 안도하고 있어야 하는 걸까?

차이를 가진 소수에 대해 다수가 어떻게 루머를 양산하고 편견을 증폭시키며
차별과 폭력과 살인으로, 별 죄책감 없이 나아가는 과정이 아주 적나라하다.   

by cherry | 2009/10/26 09:35 | 영화/음악/망가 | 트랙백

[레볼루셔너리 로드]재고 관리

Revolutionary Road를 뒤늦게 봤는데...
인상 깊은 대사가 나오더군.

Knowing what you got,
Knowing what you need,
Knowing what you can do without
- This is an inventory control.

네가 뭘 가졌는지 아는 것,
네게 필요한 게 뭔지 아는 것,
너한테 뭐가 필요 없는지 아는 것.
- 이게 재고관리야.

삶은 욕망과의 싸움 아닐까 싶더라.
가진 것과 원하는 것 사이의 긴장을 견뎌내지 못한 에이프릴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원하는 것이 불확실하지만 가진 것에 좀더 맘이 기운 프랭크는 오늘을 살아간다.
좋고 나쁘고의 문제라기보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그게 어떤 선택이든 늘 몸과 마음의 결핍을 부른다는 것.

샘 멘더스는 아메리칸 뷰티보다 좀더 극단적인 방법으로 미국 중산층 부부의 현실을 드러낸다.

by cherry | 2009/10/16 11:15 | 영화/음악/망가 | 트랙백

씨바 -.,-

100%를 해주면,

거기에 대해 고마워하는 게 아니라,

왜 120%를 내놓지 않느냐고 타박을 하는,

천박한 것들.

그곳에 내가 몸담고 있다.

by cherry | 2009/10/15 18:22 | 끄적끄적 | 트랙백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박원순 변호사가 쓴 세기의 재판 이야기.

소크라테스로부터 예수, 토머스 모어, 마녀사냥, 갈릴레이, 드레퓌스그리고 가장 최근 것으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쓴 D.H. 로렌스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앞서 이해받지 못해 죽은 사람들, 시대의 음모 때문에 희생당한 사람들에 관한 재판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물론 더 핵심적인 것은, 음모와 편견, 또는 대중의 광기 속에서 피어난 한줄기 시대의 양심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살피는 것이리라.

책의 제목은 토머스 모어가 단두대에서 처형되기 전에 한 말이라고 한다. '유토피아'의 저자로만 막연히 알고 있던 토머스 모어가 알고 보니 그 유명한 헨리 8세(천일의 앤으로 유명한) 시대의 대법관이었고, 참으로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더군. 단두대에 올라가서도 수염은 죄가 없으니 잘리지 않도록 머리를 쑥 내밀었다는 일화도 있고.

드레퓌스 사건 때 에밀 졸라가 보여주었던 용감한 투쟁은 너무도 유명하지만, 그의 글 한 토막을 인용해 보면...

국가이익-그것이 법을 위반할 힘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법에 관해 말하지 말라. 자의적인 권력이 법을 대신할 것이다. 오늘 그것은 드레퓌스를 치고 있지만 내일은 다른 자를 칠 것이며, 국가이익은 이성을 잃은 채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분 아래 반대자를 비웃으며 쓸어버릴 것이고, 군중은 겁에 질린 채 쳐다면 볼 것이다. 정권이 국가이익을 내세우기 시작하면 끝이 없게 마련이다. 그것은 모든 것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의 차이를 허용치 않고 차이를 감내하지도 않을 것이다. 만약 그것이 드레퓌스에게 적용된다면, 다른 누구에게도 적용될 게 분명하다. 새시대의 동이 터올 때, 대혁명이 보인 첫 행동은 국가이익의 저 거대한 요새, 바스티유를 쳐부수는 것이었다.

어째, 오래 전일, 남일 같지가 않다. 

by cherry | 2009/10/10 18:10 | 글책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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